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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알고 싶다, 도둑골의 붉은 유령, 여양리 뼈 무덤의 비밀, 여양리 루사, 국민보도연맹, 보도연맹, 야마토주쿠




    8월 19일 방송하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도둑골의 붉은 유령 - 여양리 뼈 무덤의 비밀' 편이 전파를 탑니다.



    세상에 드러나게 된 마을의 비밀


    경남 마산의 여양리에는 골짜기를 따라서 몇 개의 작은 마을이 흩어져있습니다. 도둑골로 들어서보면 저수지를 따라서 낡은 집들이 있습니다. 도둑골에는 이따금씩 흉흉한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사고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여기는 혼자 오기가 무서워요. 아무도 없는데 가끔 버스 벨이 울린다니까."


    - 여양리 버스 운전기사 -





    여양리는 마산 버스 운전기사들에게는 피하고만 싶은 노선입니다. 여양리 버스 종착역에 다다르게 되면, 희끄무레한 여인의 형상이 보인다고 하는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오래전에 마을의 비극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침묵했습니다. 



    마을의 비극이 세상에 드러난 건 2002년이었습니다. 태풍 루사로 인해 여양리에 큰비가 내렸습니다. 비에 휩쓸려서 수십 여구의 유골이 밭으로 쏟아졌습니다. 밭 주인은 놀라서 경찰에 신고했지만 마을 노인들은 묵묵하게 유해를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들은 이내 오랜 침묵을 깼습니다. 



    "국민 학교 올라올 때에 여기서 죽이는 것을 봤거든. 총으로 쏴 죽이는 거." 


    - 여양리 마을 맹씨 할아버지 -


    "온통 빨갰었어요. 비가 와서 냇가가 빨갛게 물들어있었다고."


    - 여양리 마을 이장 박씨 - 


    오래전에 그날의 일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죽였던 가해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모두가 알지만 숨겨왔던 이야기 


    마을에 유골이 쏟아져 내려서 한바탕 난리가 났던 2년 뒤에 경남지역 유해 발굴팀에서 발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수 십 여구에 불과한 줄로만 알았던 유골은, 구덩이마다 쌓여있었습니다. 총 200여구의 시신들이 여양리 뒷산에 긴 시간 동안 잠들어있었던 것입니다. 해진 양복과 구두 주걱 그리고 탄피 등도 유해와 함께 발굴됐습니다. 발굴팀은 유류품을 토대로 하여, 죽음을 당한 인물이 누구였는지 추적에 나섰습니다.



    "모내기하던 사람도 끌려갔고 뭐 집에서 그냥 일을 보던 사람도 끌려갔고. 여기는 얼마 안 죽였어. 한 200명 정도."


    -여양리 동네 주민 -



    1950년경 여름날의 마산 여양리, 맹씨 할아버지는 그날에도 비가 많이 내렸었다고 기억했습니다. 미끄러운 길을 뛰어서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가던 길을 멈춘 것은 수십 대의 트럭 때문이었습니다. 여양리 너머에서부터 낯선 얼굴들이 트럭에 실려서 왔다고 했습니다. 이내 어디에선가 큰 총소리가 들려왔고, 비명이 이어졌습니다. 얼마 후에 경찰은 마을 청년들을 시켜서 죽은 사람들을 묻으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포승에 묶인 채로 총을 맞은 시신들과, 도망가려다 시체에 깔려 죽어서 뒤엉킨 시신을 묻어주었습니다. 왜 그날 그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야만 했던 것일까?





    1949년에 이승만 정부는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의 '국민보도연맹'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조직을 키운다는 이유로 하여 사상과 무관했던 국민들도 비료와 식량을 나눠 준다면서 가입시켰습니다. 심지어는 명단에는 어린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되자 이승만 정부는, 전투와는 전혀 관련 없는 지역에서도 보도연맹원을 대량 학살했습니다. 좌익 사상을 가진 적이 있다면서, 언제든지 인민군과 연합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며 국가가 나서 보호하겠다고 하던 보도연맹원들은 이유도 모른 채로 끔찍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불순분자로 간주됐습니다.


    "지금도 유족회에는 나오지 않는 유족들이 많습니다. 아직도 빨갱이 집안이라는 낙인을 두려워 하거든요."


    -당시에 여양리 유해 발굴 취재 기자 -





    현재도 진행 중인 과거, 붉은 유령


    보도연맹의 원형은 친일파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반대자들과 독립운동가의 사상을 통제하려고 하는 목적으로 만든 조직이 바로 이른바 '보국연맹'이고 '야마토주쿠'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해방 후에 친일 검사와 경찰들이 야마토주쿠와 꼭 닮은 보도연맹을 창설했던 것입니다. 


    "빨갱이 만들면 어떻게 해요? 큰일이지요. 그것을 막으려고 한 것이 보도연맹이지. 일제시대 야마토주쿠 그런 것을 만드려고 한 거거든."


    - 보도연맹을 기획했던 검사 선우종원-





    친일파는 친일이라는 치부를 덮고서 권력과 부를 유지하기 위하여 반대자들을 '빨갱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리고 실체조차 불분명했던 오랜 혐오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를 거부하고서 남하한 우익민족주의자도, 계엄군의 총칼에 맞서 저항했던 시민들도, 생존권을 요구했던 노동자들도 '빨갱이'로 불리며 위험한 존재로 몰렸습니다. 그리고 그 낙인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이라는게 그런 거예요. 언제든지 공평하지 않은 것이 인생이라고요. 과거로 세월 보내면서 사람들 때문에 국가의 힘이 낭비된다는 것이죠."


    -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보도연맹 위원의 아들 -



    "우리 빨갱이 자손이라고 보니까 그렇잖아요. 우리 아버지 빨갱이 아니라고 그렇다고 길거리에 나가서 고함을 지르고 다닐 수도 없잖아요."


    - 보도연맹 학살 피해자의 아들 -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광복절 주간을 맞아서 해방 이후에도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와 국가 폭력 간의 관계를 파헤쳐보고, '빨갱이'와 '친일파'라고 하는 한국 사회의 오랜 갈등의 근원을 풀기 위하여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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